Marcel Moth / 마르셀 모스 - 홍기성 개인전 (2018. 9. 12 – 9. 18)



“당신은 나비와 나방을 구별 할 수 있나요?”

첫 서리가 내릴 때쯤 나방들이 궁금하여 작업실을 찾았다. 하지만 차가운 바람 탓인지 나 방들은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었고 서늘한 기운 속 내 뽀얀 입김만이 피어 올랐다. 작업실을 둘러보며 켜켜이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시간을 쓸어 담던 중 이제는 멋진 날갯짓을 다하고 편안하게 잠든 그들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모습이 온전히 남아있는 것이 있는가 하면 작 은 손길, 숨소리에도 쉽사리 가루가 되어버리는 것도 있었다. 그들과 그들이 먹다 남긴 꽃 잎을 날이 새도록 모아놓고 마르셀 모스(Marcel Mauss) 그의 이름을 따 마르셀 모스 (Marcel Moth)라 불렀다. 그 뒤로 마르셀 모스는 내가 가본 적이 없는 미지의 삼도내를 향 해 다시 날갯짓을 시작했고, 나는 아직도 그 자리 남아 이듬해 찾아 올 마르셀 모스를 기다 리고 있다.

“나비의 화려한색과 우아한 몸짓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나방의 초라한 색과 방정맞은 몸짓이 존재해야 합니다. 그뿐만 아니에요. 안타깝게도 우리의 택사노미에서 그 둘을 구 별하지 못하고 있어요. 단지 편이를 위해 구별해왔고 그것을 사실이라 믿어왔던 것이죠.”

이처럼 우리 인간에게 찾아오는 예기치 못한 경험과 기억은 실존의 밑바탕이 되며 때에 따 라 이념적 본질에 저장되어 작동되곤 한다. 어느 누군가는 이러한 구성요소를 절망, 고통, 극복, 저항, 치유 등 세상이 원하는 방식대로 묘사할지 모르나 이는 15살 소년에 외침과 다를 것은 없다. 그렇기에 우리를 언제 어디든 따라 다니며 상념으로 안내하는 삶에서 자아를 마주하고 여백을 마련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만일 이 고단한 여정을 거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있다면 죽음이라는 분기점에 도착하는 것뿐인데, 나방의 귀용과 날개돋이 그리고 죽음에 비추어 볼 때 자연의 불규칙성 안에서 모든 실재는 의존과 연속 그리고 상대 적 의미를 갖게 된다. 이점에서 죽음은 영혼의 영역이 아닌 현실에 여전히 남게 된다. 예컨대 앞서 언급한 사건들에서 나의 뇌 속 시냅스 구조와 신호가 다른 방식으로 작동했다면 지 금 이 글조차 작성 될 필요가 사라진다. 뿐만 아니라 나는 숲 속 바위가 아닌 살충제 구입을 택했을 것이다. 이 때문에 우리 인간에게 매일 반복되는 선택의 순간을 단순작용으로 판단 할 것이 아니라 에픽테토스 윤리학의 영역까지 확장 시켜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고 하겠다. 알코올램프 위에서 연소를 마친 나방과 꽃잎은 하나의 물질이 되어 본래 이름은 상실하지 만 기억의 공간으로 이동하여 연속성을 마련한다. 다시 말해 재는 칼륨과 탄소 단순화합물 이지만 동시에 한 인간에게는 꽃잎과 나방으로 기억되는 중의적 위치를 갖게 된다는 것이 다. 그리고 나아가 이렇게 발생된 재는 또 다른 물질과 어우러져 전이되어 이내 예술의 영역까지 닿게 된다.

“당신은 아직도 나비와 나방을 구별 할 수 있다고 믿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