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지평선_이진혁 개인전 (2018. 2. 28 – 3. 13)




시간의 흐름이 내재 된 그의 작품에는 모종의 서사가 있지만, 서사의 주인공은 인간이 아닌 기하학적 구조이다. 지상에 우뚝 선 그 존재들은 인간을 연상시킨다. 교통체증으로 주차장이 된 길 위의 차들이 있는 이전 작품이 인간 없이도 인간의 움직임을 표현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누구보다 빨리 이동하기 위해 만들어진 자동차는 누구도 빨리 이동할 수 없는 상황을 낳았듯이, 누구보다 높이 있기 위해 만들어진 마천루들은 비슷한 높이로 서있는 서로를 바라보게 했다. 여기에서 반사, 복제, 생산은 동일한 계열의 관념이다. 자동차에서 마천루로의 변화는 수평적 차원에서 수직적 차원으로의 변주를 보여주지만, 인간 없는 구조를 통해 도시의 서사를 펼치는 점은 같다. 마천루들은 대도시에서 떠밀려 다니는 대중처럼 너무도 촘촘하게 서 있다. 그것들은 자신들이 비롯되었을 대지에 깊이 뿌리 내리지 않으며, 끼웠다 뽑았다 할 수 있을 만큼 취약하다.
도시가 발생하고 성장하고 소멸하며 다시 시작되는 과정이다. 실험 모형처럼 매끈한 3D 이미지는 도시 문명의 생멸 과정을 가속화한다. 발전된 기술이 필요한 마천루는 기술지향적인 이상향을 보여준다. 그의 작품에서 마천루는 선적 진보의 상징이다. 진보는 언제부터인가 인간의 영원한 조건처럼 당연시되어 왔다. 그러나 종교학자 미르치아 엘리아데가 [영원회귀의 시간; 원형과 반복]에서 말하듯이, 선적인 진보로서의 역사 관념은 특정 지역과 시대의 산물이다.
엘리아데에 의하면, 17세기부터 역사에 대한 선적이고 진보주의적인 관념이 점점 강하게 대두하면서 무한한 진보에 대한 믿음이 자리 잡았고, 19세기에 이르러 진화론이 득세하면서 대중화 되었다. 근대를 거치면서 역사주의의 폐해가 드러난 지금은 진보가 상수처럼 생각되지 않는다. 이진혁의 작품에서 선적으로 나아가는 시간은 퇴행을 암시하기도 한다. 디지털 프린트 작품들이 그렇다. 이 작품은 배치를 통해 뚜렷한 이미지에서 망점이 많은 이미지로 변화하는 과정을 강조한다. 물질과 에너지가 집약되었을 인공 구조물들의 엔트로피는 점차 늘어나고 덩어리들은 먼지로 변화한다. 구조는 해체된다. 새로운 구조는 이전의 잔해들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그것은 또한 자연적 인공적 재해에 의해 사막화되고 있는 생태계를 비유한다. 이미 생태계의 전 사다리에 걸쳐 편재하는 미세먼지들은 이미 상당히 진척된 문명의 먼지화 과정을 보여준다. 하기야 먼지로부터 탄생한 우주가 먼지로 되돌아가는 것은 이상하지 않으리라.

이선영(미술평론가) 평론 중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