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_recording_그림손 기획 ∙2008.11.19 - 12.01 1 페이지

���� �ٷΰ���


Re_recording  Gallery Grimson Project

2008.11.19 - 12.01 /  GALLERY GRIMSON SEOUL 



re-Recording (2008.11. 19 - 12.1)
같은 공간과 시간 속에서 같이 작업을 하는 동료들은 어느 누구보다 서로의 작품세계를 이해하고 고민을 공감하게 됩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그렇게 작업을 같이했던 작업실 동료들과 또 다른 만남을 꿈꾸며 각자의 길로 떠나게 됩니다. re-Recording전은 마치 같은 음악을 녹음했던 뮤지션들이 시간이 흐른 후 녹음실에서 다시 만나 새로운 음악을 만들고자 라는 바램이 담겨 있는 따뜻함이 있는 전시입니다. 작품세계도 다르고 인생관도 다르지만 작품을 위해 고전 분투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늘 서로를 격려하고 조언해 왔기에 바빠서 만나지 못하더라도 이들은 서로에게 오랫동안 소중한 친구들로 기억될 것입니다.
 
권기범
AMBIGUITY 시리즈는 인체의 미세한 부분을 단면화 시켜 다양한 형상을 채집한 후 직관적인 조합의 원리를 바탕으로 인체가 아닌 또 다른 모호한 형상을 구축하는 작업이다. 작업에서 보이는 형상들은 꽃, 인물, 정물과 기호 등 다양한 이미지를 가지게 되지만 작업의 부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들의 형상과는 상관없는 또 다른 이미지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내가 그리는 이 혼란한 이미지들은 이렇게 규정지어지지 않는 가변적 가치체계들에 그 근간을 두고 있으며 정의 되어 질 수 없는 동시대의 또 다른 가능성에 대한 두터운 믿음이기도 하다. 작은 인체의 파편들이 집적되어 큰 파노라마의 형상을 이뤄내듯 나의 작업 속에 가시적인 물성은 분석적 해체와 결합의 과정을 통해 예상하지 못했던 또 다른 형상과 의미를 찾아 총체적 이미지를 구현한다.
김건주 - 규정을 거부하는 과정으로서의 서술
김건주는 작업 전반에 각각의 작품은 마치 상형문자처럼 기호화된 텍스트로서 기능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적어도 작가에게 각 전시는 전체의 부분 혹은 과정으로서의 장(chapter)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견지하고 있는 서사구조란 적절한 중간대가 없어 지극히 뜨겁거나 차갑다. 
작가는 구체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나 형식이 아닌 ‘상황’ 혹은 ‘태도’ 그 자체를 제시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하나 위에 또 다른 하나를 단순히 포갬으로써 정형화된 형태나 방향을 부여하지 않고 반복 순환하는 상황 자체를 제시하는 흡사 베케트 류의 부조리극을 연상케 한다. 나아가 작가의 이런 전략은 구조 내의 사유가 아니라 구조 자체에 대한 사유를 목적에 두고 있음을 유추하게 한다.
나진숙 - 기억의 반성을 통한 자기정화 
모든 것은 흔적을 남긴다라는 말처럼 지금도 우리는 매 순간 공기를 들이키듯 기억을 빚어내고 있다. 그는 기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반성한다. 구름, 조개, 알, 물방울, 별, 배 등에서 알 수 있듯이 각각의 형상들은 구체적인 기억의 산물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이를 승화시켜 지고의 세계를 담아낸 자연이며, 관념이다. 그렇지만 형상들 자체가 가진 고유의 상징성으로 말미암아 그의 작품들은 결코 건조하지 않고 풍부한 서술성으로 충만하게 된다. 이는 마치 긴 시간의 흔적을 품고 있는 고택의 이곳 저곳에 새겨진 문양처럼 그 자체로 개인의 기억을 넘어 가슴과 가슴으로 이어져 내려온 기원이나 정화와 같은 공동체적 무의식의 구조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이 경
들뢰즈가 자주 거론했던 지층화 (stratification)는 깊이와 표면의 관계에 대한 성찰이었다. 들뢰즈의 지층은 쌓여짐을 의미하지만, 높이와 크기 또는 신성이나 힘의 상징을 대변하기 위한 은유가 아니었다. 그의 지층은 지금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의 표면들을 모두 아우르는 것이며, 모든 표면은 그만큼의 깊이를 지니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경은 풍경을 재현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녀가 경험한 주관적 인식의 토대는 자연의 스펙타클임은 분명하다. 그래서 이 경이 그려낸 색띠의 조합은 '경험의 재현'이라기 보다는 주관적 경험을 새로운 시공간에 재배치한다는 의미로서 '경험의 재영토화' 로 해석하는 것도 좋을 듯싶다.
이소영
욕구를 충족한다는 것, 그것은 또 하나의 자기완성을 의미한다. 이소영은 이러한 대상의 요소들을 서로 대립시킴으로써 갈등과 충돌을 반복적으로 야기한다. 예컨대 대상과 대상간의 대립, 색과 형태의 대립, 재료와 기법의 대립, 사고와 관점의 대립 등 이다. 이소영은 이와 같이 대상에 대한 심리적 ‘갈등’(Dissension)에 주목한다. 
그녀의 작품에 나타나는 주요 모티브는 ‘집’이다. 일반적이고 객관적인 대상의 집은 그 안에서 겪고 있는 작가 자신의 감정개입과 이미지의 조작과정을 거쳐 특수한 공간의 주관적인 집으로 전이 된다. 그리고 현실과 비현실의 공간이 중첩되어 나타나는 또 다른 공간은 4차원적인 무한의 공간으로 새롭게 인식된다.
이진혁
탈 산업화된 정보화 사회로 지칭되는 인류의 현재를 이끈 원동력의 하나로 ‘속도(velocity)’를 꼽을 수 있다.. 한편 속도에 대한 인류의 강박적 집착은 삶의 내면적 윤택함을 그 이상향으로 내세우지만 결과적으로는 이를 거스른다. 그리고 자동차는 속도에 치중하는 현대사회 일면에 대한 상징적 메타포의 하나다. 이진혁의 자동차는 사회적 자아로서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심리적 영물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작품에서 보이는 화자의 이중적 감정은 그런 작가의 심리적 위상을 잘 드러내준다. 여기서 이중적 감정이란 바로 향수와 혐오, 동경과 갈증이 교차하는 애증의 단면들이다.
조병왕
기하학적 칼 드로잉 시리즈는 캔버스에 감색법의 삼원색 사이안(cyan), 마젠타(magenta), 엘로우(yellow)를 형광안료로 그림을 그리고 그것을 사진으로 찍어 다시 초 광택 컬러 인화지위에 인화한 뒤, 칼과 자를 이용하여 사진의 표면 위를 긁어 수 천 개의 수평선을 창출하는 복잡한 프로세스를 갖는다. 회화, 사진, 입체의 작업방식이 순서대로 진행되는 <기하학적 칼 드로잉>은 3 차원 입체의 2 차원적 번역인 사진을 다시 입체적 조각을 통해 평면화하는 것이다. 작가는 잉크젯 프린터의 잉크잔액의 부족이나 기계적 결함으로 파생되는 예상치 못한 에러들이 창출하는 불규칙한 선, 패턴 및 색감들을 컴퓨터에 입력된 프린트 명령어가 프린터에 보내지는 과정에 대한 불순종의 행동 - 자유의지로 인식한다. 
홍성철
홍성철의 작품 <string mirror>은 실들이 만들어내는 레이어에 의해 자연스럽게 렌티큘러를 사용한 작품처럼 관객들이 보는 각도에 따라 이미지가 달라지는 현상이 생긴다. 물성이 강한 줄(일종의 고무줄)이 규칙적으로 배열되면서 착시에 의한 동적 파동을 발생시키고 각 줄마다 맺혀진 이미지는 깊이 차에 의해 입체적 대상으로 인식된다. 작품을 마주선 관람객은 아무런 전기적 장치가 없는 이 작품에서 강한 디지털 감성을 느낀다. 아울러 사진이라는 매체에 대한 작가의 의문을 제기한다. 사진은 어떤 장면을 포착해 정지된 이미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그는 몸을 촬영해 인화지가 아닌 가느다란 줄에 프린트에 고정시켰다. 그 결과 관람객들이 움직임에 따라 조금씩 다른 모양이 나타난다. 이렇게 분해되고 해체된 몸의 모습은 실재하면서도 부재한 것 같은 묘한 뉘앙스를 전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