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gyoon Park Affectionate Things 2017.11.01 – 11.14 / GALLERY GRIMSON SEOUL
Affectionate Things_박동윤 (2017. 11. 1 – 11. 14) 박동윤의 작품은 크게 2천년대 이전과 이후로 구분된다. 즉 2천년대 이전에는 주로 판화에 치중한 반면, 2천년대 이후로는 회화에 전념하게 된다. 매체의 차이만이 아니라 도상에서도 약간의 차이점을 볼 수 있는데 2천년 이전에는 사물을 정교하게 재현하는 성향을 보였다면 이후로는 네모꼴을 기본단위로 하는 추상화에 매진하게 된다. 이를 바탕으로 볼 때 그의 조형세계는 2천년대를 분기점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외형적인 변화일 뿐 그가 일관되게 추구해온 것은 한국의 전통미를 되살려내는 일이었다. 박동윤은 자신의 예술이 어디서 유래되었는지 밝힌 바 있다. “정원에 피어있는 붉고 노란 꽃들, 여인들의 규방에서 바느질로 이어 만든 조각보들, 한국의 전통 옷인 저고리의 옷고름들 등등이 나의 영감의 원천이다.”(작가노트 중에서) 그의 추상작품에서 이러한 이미지들이 뚜렷이 점검되지 않는다고 해도, 그가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이러한 전통적인 문화의 영향을 간결한 조형언어로 풀어내는 데에 있다. 작가는 그것을 찾아가는 하나의 방법으로 한지를 택하였다. 2천년대 이후의 작품을 한지 작업으로 일관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전통문화가 급속히 잊혀져 가는 세태에 대한 아쉬움이랄까, 아니면 그것이야말로 자신의 조형성에 적합한 최적의 매체 라고 판단한 것이 분명하다. 그의 그림이 반복성을 띠고 구조를 유지한다는 점에서 몬드리안(Piet Mondrian)이나 조셉 앨버스(Josef Albers)와 같은 추상화로 분류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의 회화는 작품의 발상이나 내용이 전혀 다르다는 점에서 그들의 추상과는 구별된다. 그의 작품이 우리나라 문화적 기반 위에서 나온 것이라면, 그의 예술론의 뿌리는 동양미학이라고 볼 수 있다. 그의 회화는 무엇보다 ‘대교약졸’(大巧若拙), 즉 ‘큰 솜씨는 마치 서툰 것처럼 보인다’는 심오한 미적인 원리에 따른다. 흔히 동양의 예술은 현란한 기술과 인위성을 자랑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현란한 기술과 인위적 기교에 치우치면 더 큰 것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비어 있으면서도 그 쓰임이 무궁무진한 도의 현묘(玄妙)한 작용과 관련된다. 장자가 당대 최고의 장인이었던 공수(工倕)의 손을 비틀어버려야만 천하에는 비로소 사람들이 교묘함을 지니게 될 것이라고 한 것은 모든 인위적인 기교를 완전히 부정하고 자연스러운 상태로 돌아갔을 때 비로소 진정한 기교를 알 수 있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자연이 주는 소박하고도 은은한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일단 먼저 인간이 만든 화려하고도 현란한 소리에 물들어 있는 귀를 씻어야 하는 이치와도 일맥상통한다. 말하자면 버리고 비울수록 더 많이 채우는 역설의 미학에 바탕 해있는 셈이다. 박동윤의 회화는 규칙성을 띤 것 같지만 가변적이고, 반복성을 띤 것 같지만 임의적이며, 또한 색에 있어서는 땅과 나무와 바다의 색깔을 퍼 나른 것 같다. 구조와 구성을 겸비한 작품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소박한 느낌이 더 강하다. 세련된 도시미 보다 정겨운 시골스러움이 더 강하게 느껴지는 것은 바로 이러한 대교약졸의 독특한 태도에 기인하지 않나 싶다. 작은 손끝에서 만들어지지만 더 큰 것을 담아내려는 작가의 의도가 묻어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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