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eun An ∙2008.12.17 - 12.30 1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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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eun An   Disposable Identity

2008.12.17 - 12.30 / GALLERY GRIMSON SEOUL 


안세은 _ 일회용자아 (2008.12.17 - 12.30) 

안세은은 일상에서 반복적으로 소비되는 사물, 상품에 주목한다. 그녀가 주목한 것은 일회용품, 그 중에서도 종이받침, 생수병 뚜껑 등이다. 한 번 쓰고 이내 버려져야 할 것들이고 너무 많고 흔해빠진, 하찮은 것들이다. 그러나 그렇게 소멸시키기에는 아름답고 견고하고 아까운 것들이기도 하다. 그래서 작가는 쓰고 버려지고 마는 것들을 수집, 채집했다. 아름다운 문양으로 장식된 종이 받침을 캔버스에 확대해서 그려놓는가 하면 다양한 생수 병뚜껑을 집적, 배열시켰다.

종이 받침을 캔버스에 부분적으로 확대해서 그려놓은 그림은 자잘한 점들의 산포로 이루어진 추상적인 세계를 보여준다. 펄이 들어간 흰/회색의 물감/점은 어두운 배경을 바탕으로 별처럼, 눈송이처럼 반짝이면서 소중하고 아름다운 느낌을 자아낸다. 단순히 소모되고 마는 일회용 종이 받침의 운명을 순간 역전시키는 것이다. 이 추상적인 점들은 구체적으로 존재하는 특정 사물의 피부를 재현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묘사한 것은 분명 아니다. 여기서 구상과 추상, 재현과 비재현의 경계는 마냥 흐려진다. 붓으로 그려진 것이 아니라 스텐실 기법으로 찍어서 만들어진 점들이 종이 받침의 문양을 다만 ‘시늉’하고 있다. 흑백의 단일한 색상에 의해 반복적으로 증식하는 점은 미묘한 환각을 불러일으키지만 규칙적이고 규격화된 패턴을 만들어 보인다. 사실 그렇게 이루어진 형상이 무엇인지 구별하기는 어렵다. 종이 받침이라고는 상상하기 힘들 것이다. 화면은 촉각적인 점들의 융기로 덮여있고 무수히 산개하고 번져나가는 유기적 생명체의 잔영을 순간 안기기도 한다. 유동적으로 흘러 다니는 점들은 시선을 교란하고 화면을 약동적인 그 어떤 것으로 돌변, 팽창시킨다.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이 단조로운 점 찍기는 표면을 덮는 힘과 장력을 발산하고 있는데 그것은 일종의 강박도 거느린다. 주어진 공간을 촘촘히 채우고 가지런히 정돈하고 그것들로 인해 완성과 안정감을 추구하는 작가의 심리적인 속성이 자리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그러니까 이고된 육체적 노동은 일종의 치유적인 작용도 한다. 반복적인 리듬, 미묘하게 변해가는 음악적인 리듬과 일정하게 가지런히 정돈되는 점들은 심리적인 안도감/ ‘무념무상’의 시간을 안기는 것이다. 동시에 물감/점은 작가의 신체의 한 부분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작가가 화면에 남긴 붓질/점은 그녀의 현존의 흔적인 셈이다. 이 표시들은 작가의 사인이기도 하고 창조적 주체로서의 그녀의 실존을 주장하기도 한다. 모든 것이 일회적으로 소모되고 피상적 관계 속에서 소멸되는 현대인의 삶과 운명 속에서 개별적인 점 하나를 반복해서 찍고 그것으로 일회용품의 아름다운 형상을 환생하는 동시에 자신의 실존적인 의미망을 각인하는 제스처가 다름 아닌 그녀의 그림/작업인 셈이다.

박영택(경기대학교교수, 미술평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