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의 봄, 초등학교에 입학한 지 두 달쯤 지난 어느 날 이었다. 하교 시간의 교문 앞은 언제나 어지러웠다. 동네에서 같이 흙장난하던
또래 한 두 명이 친구의 전부였고, 유치원도 가 본 적 없던 내게, 한
교실 안에 70명 가까운 아이들이 모여 와글대는 풍경을 매일매일 마주하는 일은 즐거움이기보다는 공포에
가까웠던 것 같다.
5월을 며칠 앞둔 어느 날 정오 즈음의 그 기억은, 먼지로 가득한
뿌연 하늘과 따스하지만 답답한 햇살의 인상으로 시작된다.
당시의 8살
꼬마들의 하교는 방향이 같은 아이들끼리 그룹으로 묶여 예닐곱 명씩 줄지어 가는 방식이었다.
놀랍게도 아이들은 정말 한 줄로 나란히 줄을 흩뜨리지
않고 길을 건너고 인도를 걷고 골목길로 접어들어 각자의 집으로 사라져 갔다.
그 그룹에서 가장 가까운 집의 아이가 맨 앞, 가장 먼 집의 아이가 맨 뒤에 따라붙는 시스템이었는데, 동네에서
가장 꼭대기, 산 아래에 살던 나는, 우리 조의 맨 뒤 부엉이
캐릭터가 그려진 가방을 메고 있는 아이 다음에 줄을 서면 되는 일이었다. 담임선생은 한 줄씩 사방으로
아이들을 출발시킨 후, 마지막으로 우리 조를 데리고 학교 정문 바로 앞에 있는 횡단보도를 함께 건넜다. 유일하게 차도를 건너는 조에 대한 배려였다. 그곳에서 인사를 하고
선생님은 학교로 돌아갔고 우리는 골목으로 접어들어 걷기 시작했다.
사실 당시의 나는 한 동네 아이들끼리 함께 하교하는
이 시스템을 잘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학교에서 집까지 이르는 길 전체를 파악하지도 못했던 나는
그저 부엉이 가방만 보고 따라 걸었고, 그러다 보면 앞서 걷던 아이들이 하나 둘 사라졌고, 마침내 부엉이도 사라지고 나면, 아, 내가 알고 있는 집 근처 골목이 나타나는 것이었다.
그날은 좀 달랐다. 난
횡단보도를 건너 본 적이 없었다. 뭔가 잘못됐다 싶었지만 나는, 횡단보도를
다시 건너 교문 안으로 사라지고 있는 선생님을 큰 소리로 불러 세워 미심쩍은 이 상황을 바로 잡아 달라고 요구 할 만큼 똘똘하고 용감한 아이가
아니었다.
대신 묵묵히 아이들의 행렬을 따라 낯선 길을 걸으며
부엉이 가방 친구가 앞에 있으니, 어딘가로 돌아서 우리 집 근처까지 분명 가게 될 거야, 오늘만 특별히 다른 길로 가는 걸 거야... 속으로 중얼대며 태어나
처음 겪어보는 불안감으로 머릿속이 하얗게 지워져 가던 스스로를 다독였다.
오래된 기억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이 일도 대 여섯 장의
파편적인 이미지들로 구성되어 있고, 각 장면들마다 나의 감정과 생각의 단편들이 마치 주석처럼 박혀 있는데, 마침내 마지막 두 개의 장면.
그 중 앞의 것은 이미 모두 사라져 버린 친구들의 텅
빈 자리와 최후에 남은 부엉이 가방 친구가 보여준 낯선 옆모습이다. 전 날 까지 늘 보았던 그 친구는
남자아이였지만, 그날은.. 아니었다.
그 여자 친구는 인사도 없이 가로수 뒤의 건물 안으로
빠르게 사라졌다.
내 앞에는 난생 처음 보는 큰 버스와 수많은 차들이
빠르게 달리는 도로가 펼쳐져 있었고, 나는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열 살까지 꽤 울보였던 내가 울음을 끝까지 참은 것은, 퇴색한 기억 속 에서도 왠지 분명하다고 여겨지는 몇 가지 중의 하나다. 개발이 한창이던 서울 변두리의 공사먼지 자욱한 울퉁불퉁한
인도를, 입술을 깨물며 빠르게 걷고 있던 내 모습이 이 기억의 마지막 장면이다.
확언컨대, 요즈음의
여덟 살 아이들과 비교해 놀라우리만치 늦되고 어리숙하던 그 날의 그 아이가 어림잡아 옳은 방향을 짚어내기에 그 장면 속의 그 곳은 너무 낯설고
먼 길 이었다. 이 일의 기억은, 여기
까지가 전부다.
마지막 장면을 마지막으로, 내 유년의 가장 큰 이벤트였던 이 기억의 나머지는 말끔히 휘발 되어 있다.
가끔 궁금해진다. 아랫입술을 꽉 깨문 채 그렁그렁한 눈물을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있는 힘껏 앞으로만 내쳐 걷던 그 여덟 살 꼬마는 집에 무사히 도착한 걸까.
45년의 시간을 건너, 그때 남긴 기억의 편린을 찾아 머릿속 이곳
저곳을 뒤적이고 있는 나는 누구일까.
메울 수 없는 빈틈을 가진 어떤 기억 속의 사건이 꽤
중요한 일일 때, 나는 지금의 내가 의심스럽다.
그날의 아이가 만약 집에 가지 못한 것이라면. 고도화된 문명을 지닌 미지의 어떤 존재에 의해 원자단위까지 완벽히 스캐닝 되어 집 앞에서 복제된 새로운 내가
해맑은 표정으로 걸어 들어가, 오늘의 나로 수십 년을 살아 온 것이라면.
원격이동에 대한 사고실험은 원본의 인간이 지닌 사회적, 서사적 자아를 완벽히 전송 받아 구현된 복제본의 그것이 온전히 나로 연결되어 인정 될 수 있는가를 내게 묻는다.
동시에 그것은 나의 자아가, 현대의 신경과학이 대체로 지지하고 있는 바와 같이 언젠가 고도화된 과학에 의해 복제 될 수도 있을 만큼 완벽히
물질적인 것인지 혹은 데카르트가 설파하던 바와 같이 육체와 구분되는 비물질적인 그릇에 담겨 있는 어떤 것인가를 또한 묻는다.
지난 전시의 다이버들은 심해로의 고립을 통해 자아를
찾아내고자 했다.
나를 둘러싼 사회적 네트워크 안에서 형성되며 타인의
마음으로부터 반영되어 내게 지각되는 나의 모습인 사회적 자아(social self)를 고립시킴으로써
기대한 것은 무엇일까. 이 전시의 그림들은 고립이 아니라 발견을 위해 다시
심해로 향한다.
기억되는 과거, 자전적
역사의 실마리들은 나를 이해하고 해석하여 미래를 투사해 낼 수 있는 상태를 만들고, 그 상태에서 형성되는
것을 서사적 자아(narrative self)라 한다.
나의 그림은, 단절과
연결이 혼재되어 쉽게 믿음을 주기 힘든 나의 기억과, 그것에 의탁할 수밖에 없는 나의 자아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는 지에 대한 질문들이며, 부질없는
탐험의 실행에 대한 모호한 기록들이다.
송영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