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폐된 잉태 Concealed Conception 박설미 개인전 2022.11.16 - 2022. 11.22 / GALLERY GRIMSON SEOUL
“은폐된
잉태”
생명의 온기는 응축된 생성의 에너지이자 모든 존재의 시작이다. 또한, 혼돈과 단절의 처절 한 고통 속에서도 발아되는 삶의 역동이다. 자연의
경험으로 싹틔워진 온기는 즉각성의 밀도를 띤 아름다운 감정을 솟구치게 하며 내가 가장 인간다운 모습으로 살아 있음을 감지하게 한다. 어린아이의 손에 쥐어진 갓 낳은 계란의 온기는 신비이며 관조로 상상된 세계의 위대함 앞에서 두 생명체의 존재
물음이 사라진 내밀한 결합으로 무한으로 향한다. 몸에 흐르는 기억은 삶의 지층이며 무의식의 수맥이 되어
세계를 상상 속에서 체험할 수 있게 한다. 현재적 기억은 감정과 감각의 동반이다. AI의 변곡점을 넘어서 일상성에 Al와 함께 호흡하는 지금, 전 인류와의 네트워크 사이에서 오히려
고독해졌다. 고독과 소외에 휩싸여 외로운 군상 속에 내던져져 있음을 인식할 때 기억은 더욱 선명해진다. 평온의 가치와 의미를 잃고 편리를 쫓은 세계는 회색화 되어 불안으로 드러낸다.
불안은 피할 수 없는 고통으로써 인간실존의 본래성과 고유성을 찾아 삶을 통찰하게 한다. 메마른
감성, 굳어가는 심장을 본다. 인간의 편리를 위해 시작된 AI 기술은 급속히 진화한다. 인간과 Al가 공생한다는 이상 아래 AI는 인간의 복제물이 되어가고 있다. 인간의 욕망은 AI로 인한 인간의 육체의 한계를 극복 하는 것을
넘어 AI에 감각과 감정을 배양하려는 시도에 이르렀다. 이러한
시도는 인간의 영혼과 감정을 실제, 가상, 모의, 인조의 다중세계로 이끈다. 인간의 정체성과 존엄성은 물론 아무런
목적 없이 무심히 운행하는 장엄하고 아름다운 자연 섭리까지 위협한다. AI에 대한 성과가 거듭될수록
인간은 환호하지만, 은폐에는 칠흑 속의 악몽이 도사리고 있다. 인간은
고유의 시각과 세계를 지닌 의식과 무의식의 존재이다. 인간은 예측 불가한 상황에서도 판단과 추론을 가능하게
하는 유연성이 있다. 삶, 감정의 흔적을 채우는 숭고한 미지의
여백이 있다. 그것은 인간이 사유, 고뇌, 깨달음으로 얻은 묵직한 눈물로 붓칠을 하더라도 죽음의 순간까지도 다 채울 수 없는 미완성의 성역이다. 인간은 AI에 의해 감각과 지각의 잠식으로 인간의 존엄과 신성한
영혼을 점령당하는 것은 아닐까? 오늘날 인간은 AI를 잉태하고 AI는 인간을 잉태하고 있다.
박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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