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업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망각되고 변이하는 기억에 관한 것이다. 현재라는 순간은 끊임없이 과거가 달라붙어 중첩되고, 지나간 순간은 새로운 현재와의 만남을 통해 매순간 다르게 변동하여 떠오른다. 기록물을 해체하려는 습관적 행위를 통해 남게 되는 흔적들을 수집하고 집적하는 방식으로 작업이 확장된다. 이를 통하여 상실되는 순간들이 생성적으로 변이를 겪음을 공간과 지면에 시각적인 언어로 드러낸다. 작업을 통해, 뚜렷한 서사처럼 분명하게 경험케 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모호하고 흐릿하게 변하여 일순간 아무것도 아닌 것과 같이 느껴지는 모든 순간의 흐름들을 지면에 그리고 공간에 표현하고자 한다.
달무지개를 의미하는 화이트 레인보우 (White rainbow)는 이름 그대로 달에서 반사된 태양빛인 달빛에 의해 만들어지는 무지개. 즉, 밤에 뜨는 무지개를 의미한다. 극도의 절제된 조건하에서만 발생한다는 이 현상은 밝은 보름달이 뜬 날, 무수한 물방울이 대기 중에 분포하며, 짙고 깊은 안개가 동반되는 상황에서도 아주 드물게 우리에게 그 모습을 드러낸다. 온전한 기억은 이렇게도 다시 재발견될 수도, 어쩌면 한 번도 마주칠 수도 없는 것이며, 시간이 흐름에 따라 다양한 스펙트럼으로만 그 모습을 스멀스멀 드러낸다. – 2018.04.04 노트
나에게 있어 선을 긋는 행위는 순간을 쌓는 것이다. 선을 그어 종이를 채우고, 이를 세로로 1mm 두께로 길게 잘라낸 뒤, 미세한 균열을 주거나 전체의 조각을 섞고, 한 조각씩 지면에 다시 붙여가며 화면을 만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화면은 마치 지층이 균열되듯 원래의 화면과는 다르게 변이되어 새로운 형상을 만들어낸다. 선을 긋고 중첩함으로써, 기억을 눕히고 그 시간을 겹겹이 쌓는다. 현재의 시선으로 지나간 순간을 바라보고자 하는 것은 과거의 기억을 분절하여, 그 조각들을 끌어내는 것이다. 그렇기에, 쌓인 선들을 분절하고 재구성하여 순간의 연대기를 시각화 한다. 사라진 순간들과 남아있는 순간들은 끊임없이 반복적인 흐름 속에서 재구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