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nmin Jeong ∙ 2009.06.03 - 06.15 1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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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min Jeong   Psychological Landscape

2009.06.03 - 06.15 / GALLERY GRIMSON SEOUL


JEONG, CHAN MIN - Psychological Landscape (2009. 6. 3 - 6. 15) 

유사(類似)를 머금은 상사(相似)의 선
선입견 없이 정찬민의 작품을 바라보자면, 화면은 밝고 옅은 색조로 이루어진 관(tube)들의 배열로 채워져 있다는 느낌이다. 관이라고 호칭하는 이유는 그것은 분명 관의 재현이라고 느낄 정도로 입체감을 표현하고 있으며, 굵기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링거액 주입 시 사용되는 관처럼 투명하고 유연하기 때문이다. 유연함 때문에 관은 위에서 아래로 늘어져 있어 보인다. 굳이 파격이라고 할 몇몇의 관들이 약간의 질서를 깨는 것을 제외한다면, 그 배열은 일렬로 이루어져 있어 매우 차분한 정조를 풍긴다.

정찬민에게 선(line)은 시작이자 끝이며 덫이다. 그는 줄곧 선을 감싸고 물어뜯고 헤집고 탐색하면서 애증을 키워왔다. 기어이 풀어야 할 숙제라도 되는 듯 다양한 방면에서 감각을 구걸하면서까지 원초적 생명력을 가진 선에 대해 깊이 있게 천착 해왔다. 선이야말로 미술의 시원이자 종국의 결정체였다. 하지만 통념적인 선의 개념은 덫이 될 수도 있다. 말하자면 선은 다른 대상을 묘사하는 경우에도 실은 선 그 자체를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선을 이해하고 표현했을까? 정찬민의 선은 그 무엇을 재현하려는 것과 그 어떤 것도 재현하지 않는 것 사이의 기묘한 개념공간을 점유했다. 말하자면 빙빙 돌면서도 끊김이 없이 화면 상하좌우를 관통하는 선은 재현과는 별개로 선 자체의 자유로움을 구가하려는 듯 율동에 집중했으며, 이는 선이 그 자신의 정체를 아주 명확히 드러내고 있었다. 반면에 그 구성과 조합에서는 어떤 재현의 연관성을 감지할 수도 있다. 기억은 새로운 것에 개입한다. 방종에 가까울 정도의 자유로운 선들조차 자칫 무언가를 닮게 마련이란 것을. 그것은 시간의 고삐에서 풀린 여읜 님의 듬성듬성한 머리카락이거나, 물 끓이다 허기져 반쯤 뜯어먹은 생라면이거나, 수분과는 종래 이별을 고한 할멈의 발 뒤꿈치 튼 살이거나, 여름 한철 비명인지 노래인지 모르게 비벼댄 쓰르라미의 날개이거나, 어물전 귀퉁이에 휘주근하게 누워버린 물간 생선의 옆구리이거나…… 하여간 무언가를 상기시킨다.

유근오(미술비평)글 중 일부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