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ja Huh ∙ 2009.09.02 - 09.08 1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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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ja Huh  Painting

2009.09.02 - 09.08 / GALLERY GRIMSON SEOUL



HUH, MI JA - Painting (2009.9.2-9.8)

‘회화한다’함의 의미, 또는 ‘자유로서의 회화’

허미자의 회화 내부에는 사물의 직접성을 조정하는-감추거나 소외시키는- 별도의 기제가 없다. 반드시 소통되거나 설득시켜야 할 어떤 절박한 메시지가 발화되는 것도 아니다. 이 세계는 이따금 중립적인 회색조나 갈색 톤의 뉘앙스를 머금긴 하지만, 굵거나 가는 짙은 검정색의 선들에 의해 주어지는 단정하고 위엄있는 질서에서 멀리 벗어나는 일이 없다. 배경은 경쾌하지만 결코 가벼워보이지는 않는 단아한 하양색이나 미색의 여백이다. 여기 어디에도 거창한 담론을 가장한 강변과 설교, 남아도는 것, 수다, 허튼 소리를 만드는 발성기관은 없다.

허미자의 회화는 설명하려 들지 않는다. 따라서 납득도 요구되지 않는다. 성실한 재현이나 세심한 묘사의 결과라면 모를까, 가지와 잎들이 회화로 실현되는 방식은 직관적인 착상의 그것에 가깝다. 진한 검정색의 가지들은 흐르듯 화면을 가로지르고 서로 교차한다. 잔가지들의 예민한 위치와 방향, 그리고 잎들의 집산(集散)은 치밀한 밑그림과 성실한 채색과정의 산물로서가 아니라, 절반의 자동기술적 실현으로서, 순식간 그 자리에 그렇게 위치된다. 직관적인 붓질로 조율되는 선의 흐름과 맺힘은 놀랍게도 대상을 관류한다. 대상의 특성은 정확하게 포촉되고, 붓의 끝은 그것을 가감없이 실현한다. 그럼에도 그의 붓질에는 대상의 감각적 재현만으론 설명될 수 없는 요인, 곧 대상과의 유사성으로만 뭉뚱그릴 수 없는 단절이 있다. 나뭇가지는 어느덧 붓의 자유로운 운행에 자리를 내어주고, 터치들은 화면을 가로지르고, 교체되고 중첩되면서 자연스럽게 나뭇가지의 재현으로 되돌아간다. 세계를 이루던 경계들이 직관적으로 완화된다.


심상용(미술사학 박사, 동덕여대교수)글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