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곤의 개인전 <Tranquil Trace>에서 선보이는 새로운 시리즈는 오랜 시간 빛에 노출되면서 바래진 색을 갖게된 건물이 지닌 고요함을 평면으로 옮긴 작업이다. 우리 주변에는 꽤 오래전부터 한자리를 차지하고 지켜온 건물들이 있다. 짧게는 수십 년간, 길게는 수백년 간 동일한 위치에서 지금도 여전히 같은 모양새를 유지하고 있다. 헌데 모든 일에는 그만큼의 대가가 따르듯, 건물도 꿋꿋하게 제 위치를 고수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비용을 치른다. 바로 ‘시간과의 작용’이다. 건물 외부에 자리한 벽, 기와, 장식들은 처음 지어졌을 때부터 허물어지기 전까지 빛과 함께 지낸다. 장시간 외부에 노출되는 필연적인 운명은 건물이 본연의 색을 잃음으로써 일종의 값을 지불하게 한다. 그 모습을 보며 누군가는 연민을 느끼기도 하고 못 본 척 무심하게 지나가기도 한다.
그러나 이곤은 계속해서 대가를 지불하는 건물을 통해 새로이 마음이 동하는 지점을 발견하고 작업으로 끌어온다. 시간에 의해 건물 색이 빠지는 것을 보면서 그는 건물이 색을 “잃은 것”이 아니라 건물의 색이 “바랬다”고 읽는다. 그리고 그것이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아니라, 흔적을 남기게 되었다고 여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