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색다감-회화의 유혹'
권주안, 박창환, 정경희, 정형준, 황인란
2019. 6. 26 – 7. 02
어떤 시인은 타인을 만날 때 ‘저기, 우주가 걸어오는구나’라고 말했다. 사피엔스라는 존재가
우주의 한 부분이고 발생론적으로 생명은 우주에서 난 것이기도 하니 멋진 비유가 아닐 수 없다. 비슷하게 우리가 예술 작품을 대할 때도 이러한 관념은
비슷하지 않을까.
‘여기 하나의 우주가 있구나’하는. 왜냐하면 작품은 질료 이상이며 거기엔 욕망(권주안), 꿈(박창환), 마음(정경희), 기억(정형준), 영혼(황인란)이라는 우주의
에네르기가 스며있기 때문이다. 우주적 관점에서 보자면 작품을 만드는데 쓰는 작가의 땀과 노력은 총 우주 에너지의 개별적 소비일 수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여기 회화라는 장르로 다섯 명의 작가가 선을 보인다. 풍경이나 사물을
모방하는 근대 이전의 회화에서 벗어난 현대 미술은 욕망, 꿈, 마음, 기억, 영혼 등 작가의 자유와 표현이 도드라진 역사다. 그래서 자연이나 사물로서 객체보다는 분열되고 아프고
외로운 주체를 강조한 이론들이 현대미술 분석에 유용했다. 억압, 분열, 상처, 기억 등 현대미술에서 자주 등장하는 이런 용어들은 결국 대상을 분석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대상과 관련된
주체에 방점을 둔다.
<오색다감-회화의 유혹>에 선보인 작품들은 현대미술이 추구해 온 이런 여정을 닮았다. 이들이 묘사하는
대상은 사실 대상 자체라기보다는 주체의 심리를 드러내거나 숨기는 상징으로 기능한다. 그래서 이들은 회화라는 형식 안에서 자신이 스스로
어떤 존재인지 묻고 또 그것을 관객에게 되묻는다. 타인을 향한 관심이 윤리의 출발이고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가 인간 공동체의 가능성을 열어준다고 말하는
게 용인된다면 회화의 가능성을 꾸준히 추구하는 <오색다감-회화의 유혹>의 작가들은 회화라는 오랜 장르가 미적 경험의 대상으로서 여전히 유효함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수 없지만 구원의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말한다면 너무 과한 걸까.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숨어있던 나의 다른 목소리가 들릴지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