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규 Ahn S.K 1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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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hn SungKyu 


도시는 존재들을 인위적인 장으로 재편집한다. 그렇지만 거대한 하늘은 자연의 모습으로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머리 위에 항상 있다. 하지만 도시에 살면서 하늘을 보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번잡한 도시의 높게 들어선 건물들은 사람들의 자연스런 시선마저도 차단하여 소유를 향한 욕망의 체계에 가두려고 지상에 묶어 두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채우려는 그러한 도시의 탐욕은 하늘이 제공하는 비움의 미덕을 잊게 한다. 어느 것을 채우려면 거기에는 비워짐이 전제되어야하고 마찬가지로 어떤 것을 비우기 위해서는 차있음이 마련되어야 한다. 따라서 삶에서 채움과 비움은 적절히 안배된 관계를 가져야 한다. 그들의 균형이 무너지면 삶은 허망하게 되기 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시의 삶은 우리로 하여금 처음부터 차있기를 바라고 그 차있는 것이 더욱 커지기를 원하도록 몰아간다. 끝없는 욕망의 갈증이 거기에서 생겨난다. 빈틈없이 꽉 채우고 나서 비울 것이라 하지만 이미 그 때는 비울 곳이 없어 비울 수 없는 상태에 도달하게 된다. 쉴 새 없이 변하는 하늘은 우리들의 만족을 모르는 욕망의 무상함을 알려주는 곳이기도 하고 염원을 담는 희망의 그릇이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빛과 구름과 대기가 만들어내는 변화무쌍한 모습은 감상의 대상으로서도 비길만한 것이 많지 않다. 흐린 하늘이나 맑고 투명한 모습에서, 새벽이나 노을이 지는 하늘에서 우리는 알 수 없는 감회에 젖기도 한다. 이렇듯 매번 하늘은 생각한 것 이상을 전해준다. 하지만 건물들이 탐욕스럽게 차지한 도시에서 사람들의 시선은 건물들 사이에 머물고 하늘은 자그마한 모습으로 사람들 사이를 떠돈다.
   안성규의 그림에는 도시에서 소외된 열려진 하늘이 풍성하게 포섭되어 있다. 낭만주의적 풍경화가 영웅적이고 숭고한 하늘을 담고 있는데 반하여 그는 명상적인 모습을 화면에 담는다. 슬쩍 고개를 내민듯한 건물들은 그러한 모습에 사소한 도시적 일상의 정서가 결합되게 한다. 매일 대할 수 있는 도시적 하늘풍경이지만 화면에 그려진 하늘과 건물들이 아우르는 풍부한 표정들은 정중동(靜中動)의 투명한 느낌을 불러일으키며 무심히 지나쳤던 것을 우리 앞에 펼쳐 놓는다. 도시를 표현의 대상으로 삼는 그의 그림은 우디 앨런의 영화만큼이나 도시적이지만 복잡다단한 도시의 형태들과 다양한 상태의 하늘은 미묘한 긴장 속에서 목가적인 명징함을 선사한다. 거기에서 스멀스멀 밀려오는 관조의 여흥은 한가하고 여유롭다. 때문에 대단히 정결하고 섬세한 도회적 미적감흥을 불러일으키면서도 그의 풍경은 세련되고 호사스러움보다는 서민적인 안락함에 접근하고 있다. 이러한 이질적 상태를 갖고 있는 다중적 면모로 인해 그의 그림은 친숙하면서도 삶에 감추어진 이면을 튕겨낸다.